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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라이브! 선샤인!!/이벤트

러브라이브! 선샤인!! - Aqours의 ZERO to ONE에 대한 이야기

Step! ZERO to ONE.


지금의 Aqours를 상징하는 곡명이자, 오늘 개최되는 퍼스트 라이브의 타이틀이기도 합니다.


그러고보면 얼마 전, "벌써부터 잘나가고 있는 Aqours는 아무리 봐도 0이 아니고, 이 애니메이션과 현실의 갭이 거슬려서 순수하게 즐길 수 없다"라는 요지의 글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글이 우수함과는 별개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Aqours의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액면가 그대로의 위치를 말하자면, Aqours는 현재 0은커녕 1조차도 한없이 초월해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건 애니메이션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이들은 퍼스트 라이브에서부터 강당을 가득 채우는데 성공했거든요. 정말로 0에서부터 시작했던 코우사카 호노카가 강당을 가득 채우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았던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차원이 다르죠.


하지만 그 성과는 어떻게 손에 넣은 것인가?


쿠로사와 다이아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이건 지금까지 스쿨 아이돌이 해온 노력과, 마을 사람들의 선의가 있었기에 가능한 성공이었다고. 이것은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죠. Aqours가 성공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은, μ's가 쌓아낸 결실을 거의 그대로 물려 받은데다, 기존 팬들의 호의와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그에 대한 타카미 치카의 대답처럼, 그러한 현실은 당사자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성과는 Aqours가 직접 얻어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즉, 그 성공이 꼭 Aqours의 것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는 뜻입니다. 우치우라 같은 환경이라면 모를까, 요즘 같은 세상에선 어렵죠. TOKYO에는 수많은 스쿨 아이돌이 존재하고, 그들이 가진 실력과 경험은 Aqours보다 훨씬 우수합니다. 실제로도 그래요. 요즘은 굉장히 많은 아이돌물이 존재하고 있고, 그만큼 좋은 작품도 많잖아요?


그 사이에서 Aqours에게 표를 줘야 할 이유가 있는가?


μ's는 그것을 성공적으로 제시했었습니다. 많고 많은 잘난 경쟁자들 사이에서 굳이 μ's를 따라가야만 하는 이유를요. 그렇기에 성공했고, 그렇기에 정상에 올라갔죠. 하지만 Aqours는 아직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굳이 μ's나 다른 아이돌들을 내버려두고 Aqours여야만 할 이유가 있는가? Aqours만이 가진 무언가가 있는가? μ's의 카피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는가?


팬덤 대부분이 μ's에서 넘어온 이 상황에서 누가 아니라고 쉽게 단언할 수 있겠어요. 그들은 경험도 실력도 아직 당당히 내세울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이 아이돌물 전국시대, 데뷔한지 2년쯤밖에 되지 않은 이들은 굉장한 후발주자고 말이지요. 그러니까 0표. 스쿨 아이돌에 대한 관심도, 사람들의 선의도 없는, Aqours에 대한 순수한 평가는 그 정도인 거죠.


하지만 사실 그런 건 무시해도 되는 문제입니다. 전작의 후광을 등에 업는 게 뭐가 나빠요. 그런 거 흔하잖아요. 그것조차 못해서 망하고 전작에 먹칠하는 작품도 널렸는 걸요. 그 많고 많은 μ's 팬들 중 일부를 성공적으로 흡수한 것만 해도 충분합니다. 지금만 해도 이렇게 잘나가는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인 걸요. 모른 척하고 여기에 만족해도 상관 없었을 겁니다.


이를 테면, 퍼스트 라이브에서 강당을 채우지 못한다든지. 도쿄에 가지 않는다든지. μ's는 존재조차 언급하지 않는다든지, 오히려 μ's가 직접 Aqours에게 자리를 넘겨주게 만든다든지. 그냥 우리가 쟁취한 성공이라고 우기거나, 아무렴 어때~ 하고 모른 척하거나, 정통성 있는 μ's의 후계자라고 주장하거나,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하는 편이 안정적이죠. 다들 그렇게 하고 있고요.


그러나 러브라이브! 선샤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현실을 인정하고 마주한다고 하는, 번거로운 방법을 골랐죠. 자신들이 누구인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 너머를 보여주겠다고 주장했습니다. μ's와는 다른, 자신들만의 길을 걷겠다고.


그런데 애니메이션에선 딱 거기까지만 이야기했어요. 결국 μ's와는 다른 Aqours만의 아이덴티티는 무엇인가, 그들이 가겠다고 주장한 '우리들만의 신세계'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대답을 보류했죠. 그리고 그 보류된 대답을 제시하는 역할은, 퍼스트 라이브가 짊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퍼스트 라이브는 재밌을 겁니다. 사실 라이브는 기본적으로 재밌는 거예요. 무대 위에서 멋진 아티스트가 노래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춤도 추고, 수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어 환호하고, 이런 게 재미없을 리가 없는 거죠. 단순히 그런 공간 자체가 좋아서, 콜을 넣거나 하는 게 즐겁다는 이유만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아티스트의 라이브에 꾸준히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이 있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것만이라면 굳이 Aqours의 라이브를 봐야 할 이유가 없어요. 활동한지 1년 좀 더 지났을 뿐인 신인 그룹보다 더 잘난 아티스트들 많잖아요. 까놓고 말해서, 정말 그게 전부라면 μ's의 열화 카피에 불과하다는 오명을 피할 수가 없죠. "이럴 거면 μ's나 계속하는 게 낫지 않았겠어?" 누가 그렇게 말하면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냥 무난하게 재밌는 라이브일 뿐이라면.


물론 그렇다고 해서 팬들이 갑자기 이탈하지도 않을 거고, 러브라이브! 선샤인!!은 당분간 계속 잘 나갈 거고, 무슨 문제라도 있나 하면,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만,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Aqours는 무언가 특별한 것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해버린 상태입니다. μ's와는 다른 자신들만의 무언가를 보여주겠다고.


대단한 배짱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상력이 부족한 저로서는 그 무언가가 도대체 무엇이란 건지 상상도 안 돼요. 참 대단한 선언이긴 한데, 너무 대단한 나머지 "그런 게 진짜 가능하기는 해?" 하는 의혹을 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가뜩이나 허들 높은데, 그 허들을 자기들이 직접 올리다니요. 성공하면 진짜 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거죠. 실패하면 엄청 꼴사나울 거고. 그러니까 기대되면서도, 걱정되기도 하고.


라이브 팜플렛의 인터뷰에서, 리더인 이나미 안쥬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Aqours의 색이나 형태라는 건, 1st LIVE를 끝낸 시점에서 처음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말 그대로죠. 그 색이나 형태가 드러나는 순간이야말로 0이 1로 바뀌는 순간이 될 거예요. μ's의 후광을 등에 업은 후계자가 아니라, 많고 많은 아이돌 중 잘난 거 하나 없는 신인 그룹이 아니라, 뚜렷한 아이덴티티를 지닌 스쿨 아이돌 Aqours로서, 진정으로 팬을 손에 넣는 순간이.


하지만 만약 그 색과 형태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면, μ's와 별로 다를 바 없는 것이라면, 다른 아이돌보다 잘난 점이 없는 것이라면…… 썩 실망스러울 거 같네요. 말했듯이,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퍼스트 라이브는 과연 본 적도 없는 신세계로 가는 티켓이 될지, 아니면 이루지도 못할 허풍을 부렸을 뿐이라는 해프닝으로 끝나게 될지, 역시 좋아하는 작품인 만큼 전자에 기대해보면서, 하지만 후자의 가능성도 차마 떨치지는 못한 채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러 갈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