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으로서의 형태

 

성공한 작품의 속편이란 어려운 것이다.

 

전작이라는 기반이 있으니 날로 먹을 수 있겠지 싶겠지만, 사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전작의 매력을 살리면서도, 속편으로서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질 필요가 있으니. 물론 향상된 퀄리티는 기본 중의 기본이고. 속편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와 평가는, 첫 작품보다 날카롭다.

 

물론 '러브라이브! 선샤인!!' 또한 그런 문제에 직면한 작품이다.

 

오히려, 일반적인 속편보다도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터이다. 이 작품이 초기에 어떤 고생을 했는지는 이제 와서 새삼스레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 평범하게 성공해봤자 전작 덕분이 될 뿐이고, 실패했다가는 무슨 소리를 들을지 불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너무나도 악조건이었다.

 

어떡해야 하는가.

 

이런저런 문제를 무시하는 방법도 있고, 아니면 아예 편법으로 빠져나가는 방법도 있다. 그것들은 결코 나쁜 수단이 아니며, 오히려 현명한 수단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이 작품은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히기를 선택했다. 등장인물들에게도 현실과 같은 문제를 부여하는 것으로.

 

"이건 지금까지의 스쿨 아이돌의 노력과, 마을 사람들의 선의가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에요. 착각하지 말도록!"

 

이 작품은, 전작에게서 해방되기 위해, 반대로 이야기를 전작과 밀접하게 연관시키고 있다. 이야기의 스타트 지점을 μ's로 규정하고, 그 후로도 무대상에서 μ's의 존재가 오랫동안 떠나가지 않는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전작과 흡사한 전개마저 마련한다.

 

하지만, 그건 날로먹기나 우려먹기 같은 게 아니다. 같은 전개를 쓰더라도, 그 결과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같은 전개이기에 '다르다'는 본질이 보이는 것이다. 전작 덕분에 여기에 있다. 하지만 결코 전작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이 작품은 그런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을 인정하고, 그렇기에 전작과는 다른 길을 가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μ's가 만들어낸 세계'의 이야기는 전작에서는 절대 만들어낼 수 없다. 그 세계에 μ's는 없으니까. 이건 그런 세계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그 그림자에서 해방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 위대한 전작의 속편이기에 가능한 것이며, 동시에 위대한 선구자들의 후계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현실과 픽션의 싱크로인 것이다.

 

이 작품에는 이래저래 아쉬운 부분도, 조금 서투른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건 우수한 부분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다. 제대로 전작의 뒷내용을 그려내면서도, 이 작품만의 결론을 내고. 결코 문제에서 도망치지 않은 채, 전작에 대한 리스펙트를 선보이며, 새로운 무언가를 제시하는 작품. 그건 틀림없이 '이상적인 속편의 형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우리들은 그것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단독 작품으로서의 형태

 

근거 없는 개인적 감상에 불과하지만, 이 작품, 의외로 신규 팬이 많다는 인상이다.

 

물론 속편으로 입문하는 팬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이상하게 여길 일은 아니다. 같은 회사의 건담 시리즈 같은 것도 그렇지 않은가. 시리즈물이란 다 그런 식이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느끼는 것은, 이것이 전작을 강하게 의식하고, 전작의 존재를 전제로 삼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본적인 세계관이나 설정을 공유할 뿐, 그 외에는 별로 연관성이 없는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므로,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전작의 지식이 필요할 터이다. 보통은 그렇다.

 

하지만 그 신규 팬들은 전작을 보지 않은 경우에도 제대로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대충 눈치껏 파악했다, 뭐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기존의 팬과 같은 레벨으로, 가끔은 그 이상의 레벨으로 이야기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잔뜩 존재한다. 물론 우수한 식견을 가진 소비자라는 건 그렇게 드문 존재도 아니나, 이번에는 작품에서'도' 그 이유를 도출해내고자 한다.

 

극장판에서 등장하는 세이신 고등학교의 학생들은 μ's는커녕 스쿨 아이돌에 대해서도 잘 모르며, 그들은 그럼에도 Aqours와 Saint Snow의 반짝임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것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 뒤에 있을 이야기나 사정따윈 모른 채로, 단 한 번의 라이브로, 말이다.

 

그건 현실의 신규 팬과 거의 같은 입장이라 할 수 있겠지. 실제로, 그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자세한 사정을 모를지라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개인의 경험이나 지식이 설명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잠시 μ's의 이야기를 되돌아보자. 그녀들은 자신들을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정의하고 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라도 상관없다. 스쿨 아이돌이 되면 누구나 반짝일 수 있다고. 그 테마를 표현하는 것이 'SUNNY DAY SONG'이다.

 

스쿨 아이돌이 되면 누구든 반짝일 수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반짝이기 위해선 스쿨 아이돌이 될 필요가 있다. 실제로 'SUNNY DAY SONG'에서는 모든 공정이 스쿨 아이돌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 목적마저도 스쿨 아이돌을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 μ's를 뒤에서 지탱해온 히후미 트리오마저도 스쿨 아이돌이 되는 묘사를 보면 일목요연하다. 호노카가 추구하는 반짝임이란 스쿨 아이돌이라고 하는 특별한 존재의 것이다. 다만 그 허들이 굉장히 낮을 뿐. 그러므로 스쿨 아이돌, 혹은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가 되지 못하는 자는 반짝임을 손에 넣을 수 없다.

 

결국엔 특수성.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한없이 올바르다고 할 수 있다. 특별한 존재의 이야기이기에 아름답고, 그것을 눈부시다고 느낄 수 있다. 굉장한 사람들이 노력해서 승리의 영광을 손에 넣는 이야기. 성공담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고. 꿈을 논하는 이야기란 당연히 꿈만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이것은 신화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Aqours의 이야기는 다르다. 그녀들은 전작의 특수성과는 상반된 개념인 보편성을 결론으로서 제시하고 있다. 이번 작품의 극장판과 'Next SPARKLING!!'은 아까 언급한 전작의 그것과는 정반대다. 결승 연장전의 가치에 공감하는 것은 같은 스쿨 아이돌이 아닌 일반 학생들이며, 그 후의 라이브의 공정은 그 일반 학생들의 협력으로 성립되고 있다. 물론, 라이브의 목적도 스쿨 아이돌만을 위한 것이 아닌, 우라노호시 여학원의 학생들을 위한 부분이 크며, 또한 세이신 고등학교의 학생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말할 수 있을 터이다.

 

목격한 반짝임을 이야기하는 와타나베 츠키와 학생들이, 스쿨 아이돌이 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명백하다. 스쿨 아이돌이 되지 않아도 반짝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Next SPARKLING!!'에서는 스테이지에 서지 않는 사람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반짝이고 있다. 그게 바로 보편성이다. 스쿨 아이돌조차 아니어도 반짝일 수 있다.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스쿨 아이돌, 혹은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의 굉장함'이 아니다. 일단 노력하면 어떻게든 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는 사람들의 신화적 이야기와는 달리, 그들은 몇 번씩이나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은 이루지 못하고'라는 말을 내뱉을 정도다. 살아가는 것은 괴롭고,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Aqours는 그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먼저 말해두겠습니다만, 당신들은 결코 잘못한 게 아니었어요. 스쿨 아이돌로서 충분히 연습을 쌓고, 봐주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에 충분한 퍼포먼스를 해냈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거에요. 이제, 그것만으로는."

 

물론 살아가는 게 괴로운 것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은, 괴롭기만 한 게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보답받는 것은 일부의 인간뿐. 학업, 취업, 일. 더 이상 남들만큼 노력하기만 해도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 높은 금리를 바탕으로 유복한 생활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좋은 생활이란 꿈 같은 소리고,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무의미한 노력'에 의해 사람들은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다. 열심히 하지 않았기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했음에도 실패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까. 그렇기에 사회는 점점 보수적이며 배타적으로 변해, 세계적으로 그런 경향이 퍼져나가고 있다.

 

그런 세계에서의 경험이야말로,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기반 지식'이 된다. μ's라고 하는 상징적인 존재를 이야기의 축으로 삼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기반 지식 및 경험이 반드시 μ's여야 할 필요는 없는 셈이다. 눈부신 선구자의 뒤를 달리는 후발 주자로서의 괴로움. 잊어버린 소중한 초심, 무겁고 괴로운 현실과 실적과 책임. 그건 '지금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친근한 것이다. 타카미 치카도, 세이신 고등학교의 학생들도, 우리들도 그것을 체험하고 있다. 그렇기에 공감을 주고 받기 위한 특별한 레퍼런스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 그건 '평범하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이번 작품은 물론이고, 전작조차도 세상을 그냥 아름다운 것으로 그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묘사되는 것은 분명하게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상이다. 반짝임이란 반드시 그림자를 만드는 법이니까. 하지만 이 작품은 거기에 포커스를 맞춰 사회를 비판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런 세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 그저 거기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이야기할 뿐이다. 흔하고 평범한 현실으로서.

 

우리들은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계에 있다. 그럼에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상, 스스로에게 물어야만 한다. 힘든 현실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거기에 가치는 있는가? 성공이나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자기 자신은 누가 어떻게 규정하는가? 우리들의 반짝임은 무엇인가? 이 작품이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다. 별로 아름답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반드시 무언가를 붙잡을 수 있다는 보증조차도 없다. 그럼에도 계속 묻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태양이라고 하는 커다란 하나의 점에서 뻗어나온 특별한 반짝임을 이어받아, 세상 구석구석까지 골고루 비추는 보편적인 이야기. 그 반짝임은 일상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좀처럼 눈치채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뒤돌아본 순간, 그건 분명하게 거기서 반짝이고 있다.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되지 못해도, 반짝임은 이미 온 세상에 가득한 것이다. 그야말로 타이틀 그대로인 '러브라이브! 선샤인!!'은 즉, 전작 '러브라이브!'가 남긴 것에 대한 답장이며, Aqours를 포함한 '우리들'의 자문자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처음부터 계속 거기에 있었던, 단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그건 즉,

 

'너의 마음은 반짝이고 있니?'라는 것이다.

Posted by 사용자 플로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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